[논커플링] 갈대밭에 서서
하 제
갈대밭에 서서.
W. 하 제
그들은 지금 갈대밭이다.
지영의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모든 일들을 중단하고 지금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이 알고 있는 갈대밭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에 가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있을 뿐더러 핸드폰에 제대로 신호도 안 잡혀서 모두들 지쳐 숙소에 쓰러져있었지만, 모두 이것 나름대로의 매력이라면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더니 핸드폰은 저 멀리 밀어두고 매일매일 다같이 갈대밭을 거닐고 있다. 서로 마음 속 깊숙히에 숨겨둔 이야기, 일에 치여 살아서 하고 싶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못 다한 이야기를 하하호호, 화목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갈대밭에 오기 전의 지영은 꽤나 심각했었다. 틈만 나면 몸을 덜덜 떨고, 식은땀을 흘렸으며 웃긴 했지만 예전처럼의 그 환한 웃음은 아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다영이 지영 몰래 여행을 가기 위해 계획을 준비하고 그 당일에 바로 지영을 데리고 갈대가 바람에 흔들흔들, 움직이는 곳에 숙소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지영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며 안 가겠다고, 방송을 하겠다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지만 정작 갈대밭에 도착하더니 표정이 밝아지며 차에서 내렸다.
“고마워, 내 생각도 해주고.”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면서 지영이 그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짧은 한 마디이었지만 그 속에는 엄청나게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어렴풋이 짐작했다.
* * *
그렇게 나흘 간 숙소와 갈대밭을 오고가며 지내던 일상을 끝내고 곧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지영은 한 번만 더 갈대밭을 둘러보자며 방으로 뛰어들어가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준비를 하고 나왔다. 분명 촌스러워보이는 꽃무늬를 가진 원피스임에도 불구하고 지영이 입으니 아름다워 보였고, 살며시 걸쳐져있는 밀짚모자는 왜인지 모르게 만화에서 나올법 했다. 그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승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영에게 물었다.
“근데, 그 옷이랑 모자는 왜 가지고 왔어요?”
“입어보고 싶으니까!”
아이처럼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지영의 모습에 그들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이 신나서 모두를 데리고 갈대밭으로 걸어가더니 지영 혼자서 앞에 걸어다니고 모두 뒤에서 지영을 따라가고 있었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그 곳에서 지영은 긴 원피스를 펄럭이며 천천히 걸어가다가 갈대밭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발견했는지 지영은 바로 그 길을 따라서 갈대밭 가운데로 걸어들어갔다.
모두가 의아해하며 지영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흩날리는 원피스와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밀짚 모자를 손으로 살짝 잡은 채로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문득, 그들은 지영을 바라보며 한 생각이 들었다.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하며 여기까지 달려왔음에도 저렇게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채 버틸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그 미소가 무너져서 눈물로 얼룩지는 날들도 있었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중간에 포기할 법도 한데. 그녀이니까 가능하였겠지, 양지영이라는 사람이었으니 가능하였겠지. 그녀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들은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그대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서요.
“거기서 바라만 보지말고, 여기 와서 다같이 사진찍자!”
지영의 제안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같이 지영이 있는 갈대밭 가운데로 들어갔다. 지영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지영이 카메라 앱을 켜고 열심히 팔을 뻗어 모두가 화면 안에 들어오게 하자, 다들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하고. 찰칵, 그렇게 추억 한 장을 남겼다.
* * *
“안녕하세요, 양띵입니다!”
갈대밭에 다녀오고 난 후, 지영은 행복한 미소를 띠운 채 방송을 켰다. 채팅창에는 모두 지영의 건강과 관련한 이야기와 여행은 어땠냐는 등의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지영은 웃으며 채팅창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보고 천천히 대답을 해주었고, 그리고 정말로 오랜만에 지영은 아무런 걱정도 아픔도 없이 방송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