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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다눈] 그대

​다밍

너와 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네가 없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무작정 길을 걷는 것 외에는.
그래도 나는 악착같이 너를 잊어보려고 옷을 챙겨 입고 나가 무작정 길을 걸어봤다.

카페도 가 보고, 예쁜 단풍을 보면 잠시 멈추고.
하지만 이렇게 할수록 더욱더 네 생각이 났다. 늦가을에 만개한 단풍의 색깔은 꼭 네 머리색 같아서.

우리가 헤어졌던 날은, 늦가을이 시작될 때. 예쁜 갈대밭에서. 일주일 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용했다. 우리는 원래 만나서 굳이 어디로 놀러 가지 않았다. 그저 둘만 있어도 충분하다 여겼었지.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너는 내게 말했다.

“요즘 갈대밭이 예쁘다던데, 갈래?”

안 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거절하고 싶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네가 갈대밭에 가서 이별을 고할 거란 걸 알고 있었나 보다. 그래도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네 표정은 씁쓸해서.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준영아.”

그렇게 우리가 도착한 갈대밭에서, 너는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우리... 어려울 것 같아.”

나는 네가 이별을 고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저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멍해졌다. 멍청하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입은 열었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보네...?”

아니라고. 당장이라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나는 손을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다영아.”
“준영아, 고마웠어. ... 그리고, 좋아했어.”

내가 뒤늦게 너의 이름을 불렀을 땐 넌 이미 결심을 굳힌 후였다.

“나도 좋아했어, 다영아.”

널 잡을 수 없었다. 잡기에 미안했다. 그렇게 말을 마친 우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너에게 등을 돌렸을 때부터 내가 무작정 걷기 시작했나 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걷는 곳은 모두 너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이 카페는 너와 자주 왔던 곳이고, 이 거리는 너와 함께 많이 걸었던 거리다. 이 카페에 올 때면 너는 항상 카페라테를 시켰고, 이 거리를 걸을 때는 단풍의 색이 예쁘다고 잠시 멈춰 사진으로 저장해두거나, 나에게 이 단풍이 예쁘다고 말하거나, 멍하니 단풍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이제 홀로 거리를 걸었다.

가끔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에 혹시나 하고 돌아보면, 텅 빈 거리였다. 아니, 거리 곳곳마다 네 모습이 가득했다. 늦가을 단풍을 닮은, 우리의 추억 속에 있는 예쁜 너의 모습. 어째 걸으면 걸을수록 더 네가 생각났다. 그리고 궁금했다.

나는 아직 널 그리고, 생각하고 있다. 너도 아직 나를 생각할지. 우리 발걸음이 나란했던 이 거리를, 가끔 걸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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