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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삼] 日中逃影 ; 일중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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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中逃影 ; 일중도영

 

 

日날 일 中가운데 중 逃달아날 도 影그림자 영

한낮에 그림자를 피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비유해 이르는 말.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서로 바쁘게 지내왔던 우리는 스물의 중턱이 지나서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대기업의 대리로, 나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4년에서 5년이 지난 뒤에 만난 우리는 자연스레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소주를 까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살았냐, 지금은 뭐 하면서 살고 있냐, 주변에 괜찮은 사람은 만나고 있냐, 등 할 얘기들은 다 한 것 같았다.

 

 

“너는 그리워?”

“뭐가?”

“고3 때, 되게 재밌었잖아.”

“당연히 그립지. 지금 나이엔 그때가 제일 부러웠어. 퇴근할 때 야자 마치고 집에 가는 남자애들 보면 진짜 부럽더라. 난 저 때 뭐 했나 싶어.”

“만약에 네가 고3 때로 돌아가면 뭐 제일 하고 싶냐?”

“고3으로 돌아가면? 음, 난 그때 못한 고백 하련다. 그때 못한 거, 엄청 후회하고 있어서.”

“… 그래? 되게 의외다.”

 

 

 그의 답변에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고백이라. 내가 예상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아 비어버린 소주잔만 손가락으로 툭, 툭. 다른 한 손은 내 무릎을 툭. 건들릴 뿐.

 

 

“뭐가. 공부 안 하고 그냥 놀고 싶다 할 줄 알았어?”

“어 조금. 너 같으면 딱 그럴 것 같았거든.”

“푸흐, 그런가. 좀 의외네. 너는?”

“나도 당근이지. 그때 가면 공부라도 좀 해둘걸. 뭐 어떻게 살려고 놀았을까. 그때 공부 조금만 했어도 이러고 있진 않았을 거 아냐.”

“그런가. 힘들걸. 많이.”

“음, 그래도 지금보다 힘들려나.”

 

 

 서로의 잔에 소주를 채워놓고서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입에 털어놓고 철 상에 내려놓는 소리가 가게에 작게 퍼져 공기 속으로 날아가 희미해졌다. 그 이야기가 끝난 뒤엔 말이 오고 가지 않았고 그저 술만 마실 뿐 진전이 없어 보여 자리를 그만 끝내려는 건지 그가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니 나도 일어나야겠다 싶어 일어나 빠르게 계산대로 향했다. 내 모습을 보던 그는 나에게 다가와 카드를 내밀던 나의 손을 막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 내가 낼게. 먼저 가.”

“무슨. 옛날부터 너한테 얻어먹은 게 얼만데. 이렇게라도 갚아야지. 빨리 가. 가서 쉬어.”

“… 참나. 알겠다. 잘 살아. 나중에 또 보면 술 마시자.”

“그래.”

 

 

 어두컴컴했던 집에 불이 켜졌다. 여전히 비어있는 우리 집에는 널브러진 옷들과 인스턴트식품들의 껍데기들뿐이었다. 씻지도 않은 채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아까 있던 일들을 생각했다.

 

 

“고3 때, 되게 재밌었잖아.”

“당연히 그립지. 지금 나이엔 그때가 제일 부러웠어. 퇴근할 때 야자 마치고 집에 가는 남자애들 보면 진짜 부럽더라. 난 저 때 뭐 했나 싶어.”

 

“나도 당근이지. 그때 가면 공부라도 좀 해둘걸. 뭐 어떻게 살려고 놀았을까. 그때 공부 조금만 했어도 이러고 있진 않았을 거 아냐.”

“그런가. 힘들걸. 많이.”

“음, 그래도 지금보다 힘들려나.”

 

 

 힘들었을까. 힘들까. 그래도 지금보단 괜찮겠지. 눈을 감았다. 여러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헤집었다. 즐거웠던 기억들, 아쉬웠던 기억들. 아팠던 기억들. 순서를 맞추지 않은 채 이리저리 자리를 잡아 나를 더 아프게 만든다.

 

 차라리, 과거로 돌아갔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日中逃影 ; 일중도영

 

 

 

“준영아 일어나야지. 늦겠다. 빨리 밥 먹어.”

 

 

 나를 깨우는 어머니의 목소리. 커튼이 걷히자 들어오는 햇빛이 내 눈을 찌르듯 들어온다. 이내 들려오는 알람은 내 몸을 일으키게 만들었… 어라.

 

 

“… 어?”

“나와서 밥 먹어.”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폰을 켰다. 2012년 10월 1일. 6년 전으로 돌아왔다. 24살의 김준영에서 고등학교 2학년, 18살의 김준영으로 와버렸다.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를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왜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와 있는지. 이게, 가능한 일인지.

 

 

“… 엄마. 오늘이 몇 년 며칠이지?”

“오늘? 2012년 10월 1일이지. 왜?”

“… 아. 그래.”

 

 

 5년 만에 이 길을 다시 걸었다. 졸업을 하고 난 후 다시는 걷지 않겠다던 이 길을 시간이라는 아주 더러운 게 나를 이곳으로 돌려놓았다. 아주 개 같은 교복을 입고서 아주 개 같은 등굣길. 싫기도 하지만 참 오랜만이기도 하다. 그때 다 잊어버렸던 친구들의 이름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친구랑은 무슨 일이 있었지, 저 친구랑은 이런 일이 있었지. 나 고등학교 생활 좀 재밌게 했었네.

 

 

“야 김준영!!”

 

 

 누군가가 달려와 나에게 헤드록을 걸, 이 새끼 누구야. 아침부터 짜증 나는데 더 짜증… 아, 잊고 있던 한 사람.

 

 

“뭐냐. 아침부터 짜증 나게.”

“왜? 안 좋은 일 있었어? 이렇게 좋은 10월 1일부터 왜 그런대.”

“… 아니. 좀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아서.”

 

 

 그동안 있던 일이 꿈이었을까. 나는 지금이 꿈… 아니. 그동안 있던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이 현실이었으면 좋겠다.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던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日中逃影 ; 일중도영

 

 

 

 학교는 곧 2학기 중간고사가 다가오는 시기였다. 뭐 이렇게 개 같은 시간으로 왔나 싶었는데 그냥 내가 꿈을 꿔서 그런 거겠지. 하며 넘겨 약간은 마음이 괜찮아졌다. 반에 들어오니 누가 내 머릿속에 이름들을 다 끼워 넣은 듯 모든 이름들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한승준 내 앞자리네. 그랬던가.

 

 

“너 원래 내 앞자리였냐?”

“자리 바꿨잖아. 몰라? 너 혹시 아파?”

“… 아. 그랬다. 그래.”

 

 

 내 말에 한승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제대로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도 공부 좀 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꺼내ㅈ

 

 

“야 김준영 공부한다!!!!”

“뭐?!! 김준영이?!!!”

 

 

 … 공부 실패.

 

 

 

日中逃影 ; 일중도영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이 다가왔다. 그동안 변한 게 있다면 그래도 공부는 조금 해서 점수가 올랐다는 것. 변하지 않은 건 3학년 친구들이 그대로라는 것. 점수가 조금 올라서 바뀔까 기대해봤지만 바뀐 건 없었다. 그리고,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아직까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변함은 없었다. 지금이 현실이길 바라는 건.

 

 

“3학년이네. 운도 지지리 없어서는 너랑 또 같은 반이다. 징글징글해.”

“진짜로?”

“어. 속이 느글느글하다. 김준영 또 봐야 하니까 토 나와.”

“진짜?”

“어!!!”

“정말?”

“… 장난하나 진짜. 그래 좋다 좋아. 됐냐?”

 

 

 결국엔 해주네. 제대로 원한 답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들었으니 만족. 이제 3학년, 1년도 빠르게 흘러가겠지. 그리고 그 뒤엔, 아주 살짝 미래가 바뀌어있겠지.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많이 바뀌었으니까.

 

 

“되게, 꿈같다. 진짜 꿈같아.”

“뭐가?”

“그냥. 지금이. 꿈일 정도로 놀라워.”

“요새 공부하더니 머리 좀 이상해진 거야? 아픈 거니? 병원에 같이 가줄까?”

“… 에라이. 나쁜 놈아.”

 

 

 

日中逃影 ; 일중도영

 

 

 

“김준영 성적 많이 올랐다? 공부하더니 이제 사람 됐네.”

“대학교는 가는 게 내 목표라. 그 뒤로는 생각 안 해봤어.”

“진짜로 사람 됐네. 됐어.”

 

 

 여름이 다가와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학년이 올라가 힘들어졌음을 실감시켜주는 듯 거의 축구를 하러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반에 틀어박혀 책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내 모습이 놀라운 건지 여러 친구들은 공부하지 말라며 나를 막지만 천하의 김준영. 공부를 안 할 수가 있,

 

 

“축구?”

“갈래?”

“두말하면 잔소리.”

 

 

 공부 안 할 수 있지. 응. 그래. 오늘만 포기.

 

 

 

日中逃影 ; 일중도영

 

 

 

 늦가을, 쌀쌀한 바람이 불어 우리들의 머리를 헝클어놓았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수능은 내 몸을 헤집어 놓았고. 공부도 조금씩 해와서 그런지 하위권에서 뛰어놀던 나는 중위권으로 올라와 많은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고 있다. 넌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지랄하네.

 

 우리의 사이는 진전이 없는 듯했다. 우리가 얼마나 봐왔는데, 그 이상으로는 보지 않는 건지. 현실 같았던 꿈에서도 너는 결국. 나를.

 

 

“이거 3번.”

“… 어?”

“3번이라고. 이 문제.”

“… 어. 그러네.”

“뭐 하냐. 아까부터 멍하니 보기만 하고. 여친 생각?”

“지랄한다. 네 공부나 해.”

“김준영이 나보고 공부하라는 소리를 다 하고. 다 컸네 다 컸다.”

 

 

 내 머리를 두 번 툭툭 친 그는 다시 앞으로 돌아 자신이 하던 공부에 빠져들었고 나는 그의 뒷모습에 빠져들었다. 내가 뭐 한다고 이런 녀석을, 진짜 어이가 없어. 약간 갈색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가진 뒤통수와 정갈하게 접혀있는 와이셔츠, 깔끔한 니트.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교복이지만 다른 느낌을 내기도 했다. 콩깍지가 씌여서 그런가. 요즘에 더 이상 해지는 것 같다. 꿈에서도 지금 즈음에 그랬던 것 같은데. 가까워져 가나 보다. 그날이.

 

 

 

日中逃影 ; 일중도영

 

 

 

“축하한다. 결국 대학교도 갔네. 진짜 열심히 했다.”

“그치. 너도 축하해. 대기업 들어간 거 진짜 대단하다. 열심히 살아.”

 

 

 우리는 결국 수능을 아주 좋게 끝냈고, 시간이 흘러 20살이 되던 해의 1월, 술집에 자리했다. 나는 대학교를 가게 되었고 그는 꿈에서와 같이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와 처음 마셔보는 술이기에 나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내 앞에 앉아있는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심장은 뛰어오고 등에 땀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술을 주고받다 가게에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우리를 제외한 3개의 테이블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 준영아.”

“왜.”

“너는, 갑자기 공부를 왜 그렇게 많이 했어? 뭐 얻고 싶은 거라도 있던 거야?”

 

 

 그러게.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그냥 꿈처럼은 살기 싫어서.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에게 이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으니.

 

 

“… 그냥. 이렇게 살다가는 아무것도 못 하면서 살 것 같아서.”

“음. 정신 차려서 다행이네. 다행이야.”

 

 

 그는 비어버린 자신의 술잔에 자기 스스로 술을 채워놓고선 그대로 마셨다. 테이블에 소리 나게 내려놓고서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풀린 그의 모습, 안경이 흘러내려 코에서 떨어질 듯 말 듯 한 곳에 위치해버린.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 어?”

“딱 봐도 할 말 있어. 빨리해봐.”

“…….”

“아 빨리해. 안 하면 너랑 다신 안 만나줄 거야.”

 

 

 쓸데없이 귀신같아서는. 내가 입을 옴짝달싹 못하는 것을 알아버렸는지 계속 내 눈을 쳐다보며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도 될까, 그땐 못 했던 말. 지금 꺼내도 될까.

 

 

“… 내가 이런 말 해도 될진 모르겠는데 말이지.”

“어.”

“… 나, …너 좋아해.”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은 걸까.

 

 

“야 김준영.”

“… 어.”

“미안한데, 나 먼저 간다.”

 

 

 끝났다. 우리는 여기서 끝나버렸다. 나의 그 말 한마디에 우리는 남보다도 더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제야 후회하면 뭐 하겠는가, 난 이미 많은 시간을 소비해버렸고 돌아갈 수 없다. 지금에서야 느껴버리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걸.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걸.

 

 

“… 그,”

“그리고. 연락하지 마. 길에서 만나도 모르는 척해. 나 잊고 살아.”

“…….”

“잘 살아 김준영. 고마웠어.”

 

 

 망했다. 나는 이제 그를 잊어야 했다. 잊을 수 없어도 잊어야 했다. 그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해야 한다. 잊어야 한다. 잊어야 하는데, 그가 나가고 한동안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으며 몇 병을 비워냈다.

 

 

“참나, 이러나저러나 다 좆같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폰을 켜보았다. 그에게서 온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

 

 

‘미안’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할 말이 뭐냐고 물어본 것? 내 말에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아서? 뭐, 계산 못 해서? 이해할 수 없네. 나는 끝까지 네 생각을 읽을 수 없다. 네 머릿속은 왜 이렇게 미로 같고 어지러운지, 이제 그 머릿속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이 미로를 끝내려고 한다.

 

 끝내고, 잊고, 지우고. 내 일상에서 그를 없애야 한다.

 

 

 

日中逃影 ; 일중도영

 

 

 

 잠에서 깼다. 얇은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에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고 일어나 폰을 꺼냈다. 설마 하며 날짜를 확인했지만, 어제 있었던 일은 꿈이 아니었다. 지금은 현실이었다. 그 지난 기억들은 꿈이었던 것이 확실해져버렸다. 조금만 더 열심히 살걸. 그 삶을 더 열심히 살걸. 난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공부라는 달리기를 하였는가.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어쓰고 잠에 들기 위해 두 눈을 감았다. 또다시 긴 꿈을 꾸길 바란다.

 

 

 

日中逃影 ; 일중도영

 

 

 

“… 바보 같은 새끼.”

 

 

 결국 모진 말을 하고 술집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가는 그 길마다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내 볼을 타고 내려 옷에 떨어지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사실 그런 마음 아니면서. 사실 같은 마음이면서. 똑같았으면서. 한승준 존나 바보 같다. 공부 못하는 김준영보다 더 바보다.

 

김준영. 미안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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