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눈삼] 늦가을, 하늘 너머.

하 제

늦가을, 하늘 너머.

 

W. 하 제



 

※ Trigger warning ※

 

이 글은 사망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는 소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용된 요소들은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본인은 해당 요소를 지지하거나 옹호하지 않으며, 미화의 목적 또한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저 멀리서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자동차 소리,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는 승준. 빠르게 달려오던 자동차는 미처 승준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박았고, 승준의 몸은 순간적으로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붕, 떠올랐다가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흘러나온 피들은 회색빛의 아스팔트 도로를 축축한 검은색으로 적셔나갔고, 그 장면을 본 차주는 경악을 하더니 다시 차를 타고 달아났다. 나 아직 살아있어요, 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는지 승준이 죽은 후에 손을 보았을 때, 살짝 길어서 예뻤던 손톱은 엉망진창으로 갈려 있었고 손끝은 자잘한 상처들이 가득했다.


 

“승준, 아 … 승준아 … !”


 

승준의 이름을 부르는 동시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준영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식은땀으로 젖은 옷과 세게 꽉 쥔 채로 주름이 남아버린 이불. 꿈이었구나, 다행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입꼬리만 올리며 웃고는 손으로 더듬더듬, 자신의 옆자리, 항상 승준이 누워있는 자리를 더듬어봤지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자 의아해하며 눈을 살며시 뜨고 옆자리를 바라봤다.


 

“... 승준아?”


 

아침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하며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여봤지만 승준은 자신보다 빨리 일어난 적도 없었을뿐더러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기에는 너무 집 안이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방 문에 걸려있는 검은색 양복을 보는 순간 준영은 움찔하고는 그대로 멈춰 한동안 검은색 양복만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작게 중얼거렸다.


 

“꿈이 아니었구나.”


 

승준이 없는 첫 번째 날을 맞이하는 준영이었다.





 

* * *





 

준영은 승준이 없는 세상에서 도망치려고 온갖 발악을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뭐든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매번 운이 나쁘게도 살아나면서 준영은 자신의 신세를 더욱 처절히 깨달았다. 나는 네가 없는 세상은 필요 없어, 살아갈 이유 따윈 없어, 제발 나를 죽게 해 줘. 사고가 난 후 병원에 입원을 하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준영이 외치는 말이었다. 준영이 자신을 죽여달라고 외칠 때마다 돌아오는 의사나 간호사들의 말.


 

“안 돼요, 환자분.”


 

애석하게도 딱 저 말뿐이었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그 말을 들을수록 준영은 점점 눈의 생기를 잃어갔다. 온갖 약품 냄새만 진동하는 병실에 틀어박혀 있으면 괜히 승준의 모습만 눈에 아른거렸다. 정말 쓸데없이 생생하게 보이는 승준의 모습에 마치 진짜로 자신의 앞에 있는 것만 같아서, 손을 뻗어 볼을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네가 살아있다면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겠지. 웃으며 쓰다듬는 시늉을 하다가 더 비참해져서 손을 내리고 벽을 바라보려다가, 순간 시무룩해지는 표정을 보이는 승준의 모습에 흠칫 놀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가 드디어 미쳤나.”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준영이 다시 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재빠르게 준영의 시선이 가는 곳으로 움직이는 승준을 보더니 준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진짜 승준이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보았지만, 준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게 무슨 만화도 아니고, 죽은 사람이 나한테만 보일 리가. 라고 마음속으로는 중얼거렸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준영은 승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승준은 살며시 웃으며 방금 전, 준영의 대답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 진짜, 한승준이라고?”


 

이제 좀 믿으라는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계속 끄덕이는 승준의 모습에 준영은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진짜 한승준이라니, 진짜 승준이라니. 죽었던 네가 내 앞에 이렇게 있다니. 손을 덜덜 떨면서 천천히 승준에게로 손을 뻗더니 예전처럼 승준의 뺨을 쓰다듬는 흉내를 내자, 승준은 눈을 감고 준영의 손바닥에 천천히 볼을 부비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더니 결국 눈가에 아른거리던 눈물은 준영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바로 승준을 끌어안았다.

 

따뜻한 온기는커녕 서늘한 가을바람만 솔솔 불어오고, 승준의 몸에서 나던 그 포근한 향기도 없는 승준은 예전과 같은 점은 하나도 없었지만 준영은 그래도 행복했다. 보고 싶었던 사람이 이렇게 앞에 있다는 게 어디인가. 승준과 연애를 할 때, 어리광은커녕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여줬던 준영은 이 날, 승준의 어깨에 얼굴을 부비는 시늉을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이런 모습이라도 나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정말로, 너무나도 고맙다고. 무너져 내리는 준영의 모습을 보며 말을 할 수 없는 승준은 등을 어루만지고, 토닥이는 손짓을 하며 그를 달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진정을 하자, 준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승준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승준의 손과 자신의 손을 겹쳐 잡고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 다시,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줘서 고마워.”


 

이 감사 인사는, 지금 네가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을 내가 전하는 말이라고.





 

* * *





 

둘은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푹푹 찌는 한 여름에서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기 시작하는 가을로 넘어가는 그 시기에 헤어진 둘은 한 달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노란빛으로 물드는 은행잎과, 붉은빛이 아름다운 단풍잎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가을의 중반에 만났고, 그렇게 어느새 늦가을까지 서로 함께 지내고 있었다. 같이 사진을 찍을 수도, 같이 손을 잡을 수도, 어깨에 기댈 수조차도 없었지만. 함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둘은 매일매일이 소중했고, 입가가 귀에 걸릴 정도로 웃었다.

 

승준이 좋아하던 카페에서 승준이 좋아하던 커피를 시켜서 자리에 앉아 한 모금씩 마시고 있던 준영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준과 강제로 헤어지고 한 달동안은 승준의 모습은커녕 코빼기도 안 보였다. 그때는 승준의 남은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동시에 느껴지던 압박감 때문에 억지로 꾸역꾸역 살아갔지만 그만큼 마음은 곪아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 한 달이 지나자마자 바로 가지고 있었던 병이 악화되었고 죽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죽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죽기만을 기도했을 때, 바로 그날에 승준의 모습이 보였다. 준영은 커피를 마시다가 승준을 빤히 바라봤다. 자신이 죽고 싶어 하는 것을 미리 알고 주위에서 맴돌다가 위험해 보이던 순간에 나타난 건가. 여전히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 자신이 추리해보는 이 상황에서는 이 답이 제일 신빙성이 있었다. 이걸 물어봐야 할까, 물어보면 안 될까. 준영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잖아, 승준아. 넌,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거야?”

“처음 한 달에는 보이지도 않았던 네가, 죽으려고 하니까 갑자기 나타났어.”

“그러면, … 넌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서 나타난 거야?”


 

준영의 물음에 승준은 턱을 괴고 빤히 준영을 바라만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답답해진 준영이 승준에게 알려달라며 칭얼거리자, 승준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준영은 승준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네가 들으면 싫어하겠지만, 차라리 죽어서 만나 함께 있는 게 더 행복하지 않아? 준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꼬리와 눈썹이 축, 내려가면서 시무룩해지는 표정을 보더니 준영은 조용히 승준의 손을 잡았다.


 

“죽어서 같이 있는 것보다, 내가 죽는 게 더 싫은 거지?”

“... 그래, 이제. 허튼 생각은 안 할게.”


 

준영의 말에 그제서야 승준은 다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준영이 다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자 승준은 살며시 일어나더니 준영을 바라보며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어린아이같이 배시시 웃으면서 입 모양으로 사랑해, 를 말하고는 천천히 떠올랐다. 준영도 어느 정도 예감해왔던 날이기에 당황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승준은 또 아파할 테니까.

 

천천히 승준의 몸은 떠오르면서 늦가을,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 가을이 끝나가 떨어지는 단풍잎과 은행잎이 하늘로 올라가는 승준의 모습과 함께 보여 더욱 절경이었다. 한 번 눈을 감았다 떠보니 천천히 걸어오던 구름 뒤에 숨었는지 승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늦가을의 하늘이, 예쁘구나.”


 

그래, 넌 나라도 살렸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런 거겠지, 난 그러면 네 고생이 헛되지 않게 살아가야겠지. 다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벅벅 닦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곧 가을도 끝나가는데, 하늘은 여전히 예쁘구나. 너처럼.

bottom of page